[차한잔] 월급 160만원으로 아이 셋을 키우는 친구
어제 반가운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학 여자 동기인데, 20여년 만에 만났네요.
참 오랜만이죠.
친구를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보게 된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 친구 결혼 후 보기가 힘들어져서 가끔 송년회 같은 때 핑계삼아 연락은 했었는데 집도 멀고 시간이 안 돼서 못 간다 그러더군요.
못 올 지 알지만 그래도 한번씩 연락을 했었는데, 어느날 저한테 그러더군요.
"jin3아, 나 이혼했어. 내가 애 셋 키우는 가장이야. 난 너희들 만날 형편이 안 돼. 형편 좀 나아지면 그 때 나갈게. "
그랬구나...
그래 고생이 많다...
그 후로 나오라는 연락은 안 하고 1~2년에 한번씩 전화로 안부만 물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연락이 왔습니다.
우체국 공무원 1차시험 합격했다고.
면접시험 준비 중이라고.
축하해줬습니다.
그리고 어제 우연히 시간이 맞아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간 살아온 사연을 들으니 어지간한 신파 드라마 저리 가라 수준이더군요.
결혼 초기 남편 사업이 잘 될 때는 모든 게 좋았나봅니다.
아파트도 두 채나 있었고, 장사가 잘되어서 사업체 규모도 점점 늘렸고 사업분야도 확장해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잘 되는 줄만 알았던 사업이 무리한 확장으로 빚이 늘어가게 되고, 남편이 몰래 사채까지 썼대요.
한번은 사채업자가 불러서 나갔더니, 남편은 무릎 꿇고 앉아있고 차 트렁크를 열어 흉기들 보여주며 제 친구 보고 몸이라도 팔아서 갚으라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궁지에 몰린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대었고, 집에 값나가는 물건은 다 가져다가 전당포에 맡기고 애들 용돈까지 뺏어서 스포츠토토를 했답니다.
부부싸움에 경찰이 출동하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했다네요.
남편한테 우리 아직 젊으니 막노동이라도 해서 다시 일어서자 애걸복걸했으나 남편은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이혼했대요.
그 이후로 아이 셋을 데리고 경기도 외곽 임대아파트에서 살아왔어요.
나이 많고 경력 없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저임금만 받고 작은 회사 사무보조나 고객센터 업무 등 단순 반복적인 일만 할 수 있었대요. 그나마도 회사가 다 작다보니 망해서 못 다닌 적이 많았고, 사장 비위 못 맞춰서 짤리고 그랬대요.
월급 얼마 받았냐 물어봤습니다.
180만원 정도. 세금 등 공제하고나면 실수령액 160만원 정도였대요.
애들 셋 키워야하니 야간근무 같은 건 할 수 없고 그게 최선이었답니다.
현재 큰 애가 대학교 2학년, 둘째가 대학교 1학년, 막내는 중학생.
애들 대학 가기 전에는 학원비가 한 달에 105만원 나갔다고합니다.
그럼 나머지 60만원으로 네식구 사는 거죠.
요즘은 쌀값 쿠폰이 나와서 걱정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애들 밥 많이 먹는 게 무서웠다고 그러더군요.
뉴스에서 어디 일가족 자살 얘기 나오면 시골 계시는 친정부모님이 걱정돼서 전화 하셨대요.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애들 키우며 살다 틈틈히 공부하여 우체국 계리직 시험보고 1차 필기 합격했대요.
그러면서 2차 면접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써야할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너 살아온 얘기 쓰고 말하라 그랬습니다.
"지들도 사람이면 너 안 떨어뜨리겠지.ㅅㅂ"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밝고 씩씩합니다.
그래도 나쁜 맘 안 먹고 올곧게 살아온 자기가 장하지 않냐고 너스레도 떨구요. 이제 악기도 배우고 싶고, 사회봉사단체 같은 데서 봉사활동도 해보고 싶대요.
"그래, 넌 이제 애들도 다 키우고, 직장도 새로 얻고, 행복할 일만 남았다. 멋진 남자 꼬셔서 연애나 해라."
라고 칭찬하며 기운을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러고 헤어질 때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욕봤다고 차비하라고 지갑에서 십만원 꺼내 친구 가방에 억지로 찔러넣었습니디.
오늘 오전 어제 친구 만나느라 못 읽은 어제 프차글을 읽는데 월급을 주제로 많은 대화가 있었더군요.
잊고 있었는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에 돈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친구 2차 면접까지 통과하면 밥 쏜다 그랬는데, 그 친구한테서 꼭 그 밥 얻어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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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분 꼭 합격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