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선행은 언젠가는 드러나는법
전혀 관계가 없을것 같은 화성 살인 20년 누명 쓴 윤씨의 삶에도 문익환 목사님이 계셨네요...
선행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인가 봅니다.
[이하 펌기사]“문익환 목사와 그의 제자가 도와줬어요”
그렇게 기소가 되고 재판이 시작됐다. 윤씨는 돈이 없어 국선변호사를 썼는데, 변호사 얼굴도 못 봤다. 법정 멀리서 변호사를 어렴풋이 보기는 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뭐가 뭔지 정신없이 흘러가는 사이 1989년 10월20일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윤씨는 그냥 “사형이 아니라는 데 안도”했다. 1심 판결 이후 윤씨는 무죄를 적극 주장했다. 검사를 만날 기회가 생기자 재수사를 요구했는데 그 말을 들은 검사의 반응은 옆에 있던 계장에게 “쟤, 보내라”는 한마디뿐이었다.
경찰, 검찰, 국선변호사, 판사 등이 윤씨를 외면할 때, 그를 도와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교도소에서 만난 사회운동가들이었다.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문익환 목사가 옆 방에 수감되어 있었어요. 문 목사와 그 제자들이 저를 도와줬어요.” 문익환 목사는 1989년 3월 북한을 방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어느 날 문 목사가 나를 부르는데 이미 내 사건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재판 자료를 다 달라고 해서 드렸죠. 문 목사가 수감 중인 제자를 불러서 같이 보자고 권했어요. 그 제자라는 분이 항소이유서랑 탄원서를 써줬어요. ‘그 제자’가 아주 구체적인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인으로 홍씨를 부르라고 알려줬어요. 그 덕분에 증인 신청을 할 수 있었죠.” 홍씨는 경운기 정비소 사장 동생으로 사건 당일 밤 윤씨와 같이 방에서 자고 있었다. 윤씨가 그날 밤 비좁은 방을 나갔다면 홍씨가 모를 리 없었다. 윤씨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인이다. 변호사가 할 일을 ‘문익환 목사 제자’가 대신 한 셈이다. 윤씨는 그때 자신을 도와준 문익환 목사와 그 ‘제자’가 너무 고맙다면서 “결코 잊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윤씨가 기억하는 ‘문익환 목사 제자’는 누구일까. 윤씨는 “40대 중반의 조씨 성을 가진 분”으로 “그분 스스로도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 설명에 들어맞는 유일한 사람은 조성우(당시 49세) 겨레하나 이사장이다. 당시 평화연구소 소장이었던 조 이사장은 문익환 목사와 같은 시기에 구속되어 안양교도소에 1990년 4월까지 있었다.....
일곱살꼬마
0
2019-12-04 00:02:25
근데 제목에 "들어나는"이 맞는 말인가요?
WR
0
2019-12-04 00:43:03
예 수정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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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과 같은 분이 가진 직업을 ‘목사’라고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