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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주말에만 먹는 음식

Nam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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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
2026-04-18 13:06:31

에그번은 주말에만 먹는다.

평일에는 먹지 않는다. 정확히는, 평일에 먹으면 에그번이 아닌 게 된다. 같은 빵, 같은 계란, 같은 가게인데 요일 하나 바뀌었다고 다른 음식이 되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작업실 겸 집인 방에서 일어나 느리게 씻고, 책상 앞에 앉기 전에 에그번 하나를 사 와서 먹는다. 평일이었다면 책상부터 앉았을 거다. 주말에는 책상 앞에 바로 앉지 않기 위해 에그번이 있다. 생각해 보면 에그번 자체는 대단한 음식이 아니다. 빵에 계란, 그게 전부다. 대단하지 않기 때문에 고른 것 같기도 하다. 대단한 음식을 주말마다 먹으려 들면 의식은 금방 피로해진다. 매주 반복할 수 있을 만큼만 가볍고, 매주 반복해도 싫증 나지 않을 만큼만 좋은 것. 리추얼이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의 무게여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주말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시간이다. 방심하면 평일의 연장이 되고, 작정하고 쉬려 들면 월요일보다 더 피곤해진다. 나는 그래서 주말에 몇 가지 작은 표지를 심어둔다. 에그번도 그중 하나다. 이걸 먹으면 주말이 시작됐다는 뜻이고, 먹지 않은 주말은 어쩐지 시작되지 않은 채로 끝난다.

 

재미있는 건 이 감각이 종교적인 구석이 있다는 거다. 성찬이라는 말을 꺼내면 과장 같지만, 작동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자리에서 먹힐 때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 나의 에그번은 나만의 주말을 여는 작은 성찬이다.

 

혼자 살면서 알게 된 건, 생활을 지탱하는 건 큰 결심이 아니라 이런 작은 반복들이라는 거다. 주말마다 같은 빵을 먹는 일이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이게 없으면 한 주와 다음 주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다. 경계 없는 시간은 무섭다.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이 섞이고, 섞이면 결국 전부 일하는 시간이 된다.

 

에그번을 먹으며 나는 잠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먹고, 커피를 마시고, 창밖을 본다. 주말의 에그번을 먹는 사람일 뿐이다. 월요일부터 다시 뭐가 되어야 하니까, 주말 한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어야 한다. 다음 주에도 먹을 것이다. 그다음 주에도. 그렇게 몇 해가 지나면 에그번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내 주말 아침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물에 시간이 스며드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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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HE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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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8 04:15:30

그 대단하지 않은 반복들이 리츄얼이 되고 함께 세속을 건너뛰는 성찬이 되더군요. 그래서 주말의 시간은 늘 충만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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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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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현자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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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프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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