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학폭의 또 다른 폭력, 샘폭
요즘 유명 운동 선수들의 충격적인 학폭이 모든이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데, 고등학교 다닐때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폭력으로 지금도 트라우마를 가진 입장에서 경험담을 적어봅니다.
고등학교때(80년초) 교사폭력 2가지.
1. 고1때 국,영,수 과목은 2시간씩 연달아 배정했습니다.
수학도 1주일에 6시간씩 이었는데, 점심먹은 후 5교시는 졸음과의 전쟁인데, 하필 그 시간에 수학과목.
3월중순 여느 수학시간, 수업내용이 명제, 역,이, 대우를 배우는데 어떻게 보면 말장난 일수도 있는 수 학과목에서의 논리를 배우는 것이었죠. 선생의 설명이 끝날즘 어떤애가 질문 있다 하면서 역,이,대우에
다시 설명 해 달라합니다. 선생은 또 설명을 하고, 그러면 그 학생은 다시 질문을 하고, 이러기를 4차례,
슬슬 선생의 흥분되고 열받아가는 모습이 보이더니 5번째 질문을 하는 찰나에 갑자기 선생은 청소함 으로가 마대자루에서 걸레를 빼더니 그 긴나무막대로 질문한 학생의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 그친구는 정수리 한가운데를 맞더니 입에서 거품을 물고, 팔다리 바르르 떨면서 그대로 기절. 그런 학생을 한번 더 칠려는 선생을 주변 학생들이 말려 그나마 다행. 반장이 재빨리 업고 양호실로 데려가고, 애들은 웅 성웅성, 교사는 분이 안풀렸는지 마대자루 쥐고 그때까지 쉭쉭 거리고. 반장이 양호실에서 돌아오니
상태를 물어보고 나머지 시간엔 자습하라 하면서 나가버림. 8교시후 야자시간전 그 수학선생이 다시 들어와서 반애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함. 그리고 한달후 다른 학교로 전근감.
2. 2학년 진급후 이때도 3월 중순.
시골에서 이사와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어머니는 날 품팔이. 그리고 동생들. 집이 넉넉치 않아
이친구가 새벽에 신문 배달하고 아침에 등교함. 그런데 하필 담임 선생 1년간 학급 생활목표가
철저한 등교관리. 지각, 조퇴, 결석은 부모가 돌아가시지 않은 이상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안한다
하심. 신문 배달하는 친구는 수업시간엔 늦지 않았지만 조회시간엔 늦어 첫날부터 담임 선생에게
찍힘. 그후 조회시간에 맞추어 잘 나오다 2번 걸리고, 3번째 걸린 날 사단이 남. 그날도 담임선생
조회 중에 교실 들어와 앞으로 불려 나감.
주머니에서 손가락 반없는 가죽장갑을 꺼내 끼우고 그친구 얼굴 교탁에 눕히더니 세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하게도 아닌 힘으로 얼굴을 타격함. 그것도 조회를 진행하면서. 그렇게 15분정도 쉬지
않고 그친구 얼굴 타격하며 조회를 끝냄. 그런데 오전엔 약간 붉기만 하던 그 친구 얼굴이 오후가
되면서 약간 붓기가 보이기 시작.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등교한 그친구 얼굴 전체가 브르콜린 모양으로 부풀어 오름. 안맞은 반대쪽 얼굴도 반동 충격에 의해서인지 엄청나게 부풀어 오름.
병원도 못가고 약도 못 쓰고 그렇게 한달여 학교다님. 그리고 신문배달은 아예 못하게 됨.
그후 그 선생 별명은 깡패로 불리우고, 스승의 날 때 반애들 담합하여 선물은 고사하고 일절 축하행사 안해줌. 학교 체육 행사때 반대항 축구, 농구 ,달리기 대회하면 일부러 모든경기 말도 안되는 점수로
모두 예선 탈락. 학교에서 하는 모든 반평가 행사 있으면 하는척 하면서 결과는 모두 최저점 만들기.
수학여행 가서도 반대항 장기 자랑에 우리반 1명도 참가안함. 담임은 맨날 반장을 불러 어떻게
해보라 하는데 반장부터 우리반 모두는 일치단결. 어느 순간 담임선생도 우리를 포기 했는지 일절 다구치는게 없었음. 그렇게 우리의 슬픈 고2를 보냄.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폭력에 어떻게 보면 살인미수까지도 볼 수 있는 폭력 이었는데
그 당시 우리가 할 수 있었던건 아무것도 없었음. 나라도 폭력으로 차지했는데 그깥 학내 폭력,
더군다나 남자고등학교에서 선생이 학생들 상대로 한 폭력은 부모님들도 합당한걸로 여기던
시절. 왜 그렇게 맞아야 했는지... 참 불쌍하고 억울한 고교3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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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몇몇의 집요한 괴롭힘을 호소하자 피해 망상증이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던 인간이 담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비교할만한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던 쓰레기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