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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라흐마니노프와 팝

roc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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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08 04:03:51

라흐마니노프는 태생이 대중음악가였습니다. 20세기 분위기를 예민하게 감지한, 제2 빈악파나, 민족주의의 분위기를 예견한 스트라빈스키, 졸탄 코다이, 벨러 버르토크와도 엄청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확립한 러시아 낭만주의의 철지난 계승자였습니다.  귀족 출신이었고 사회의 변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평생을 몰락귀족의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당시 유행을 만들어가는 비평가들은 유구한 음악역사의 맥락을 중시했고, 라흐마니노프의 이런 감상주의 취향의 저급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드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그는 작곡가로도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주목받던 작곡가들과 엄청난 정서적, 시대적 거리감이 있었고, 오히려 리처드 아딘셀 같은 미국의 영화음악 작곡가와 더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아예 대놓고 라흐마니노프가 영화음악이나 작곡하는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고 다녔죠.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대중성 이상의 클래식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시간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서 증명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이후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어떤 클래식 음반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의 판매량을 넘지 못합니다. 오직 가장 위대한 피아노협주곡이었던 베토벤의 5번 협주곡만이 그에 버금가는 판매량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라흐마나노프의 음악들은 팝으로도 곧잘 인용되었습니다. 아마 쇼팽 말고 이렇게 대중과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또 있나 잠깐 생각해보니, 다른 이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https://youtu.be/kHYgTfiQvIw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2악장 아다지오.

 

 

이걸 에릭 카맨이 멋지게 인용했고,

 

https://youtu.be/lK_tErs-d2Y

 

 

 

또 이걸 뉴욕의 자랑이었던 배리 매닐로우가 뻔뻔하게 배꼈습니다. 라임까지 비슷하게 따라한 걸 보니, 같은 작곡가의 곡에 영감을 받은게 아니라 뻔뻔하게 표절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https://youtu.be/su5HtRjY38k

 

 

 

그리고 앞에 다른 회원분이 올려주신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활용한 카맨의 또 다른 곡.

 

https://youtu.be/iN9CjAfo5n0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https://youtu.be/DZTAXk2NOdc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과 오자와 세이지,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입니다. 피아니스트마다 1악장 인트로의 걸음걸이들이 있죠. 치메르만의 곡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걸음걸이는 깊은 고민 끝에 나오는 단호한 결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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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UHDlover
2
2021-01-07 03:55:43

라흐 2번하면 반 클라이번..

식자우환
2
2021-01-07 04:04:34

이런류의 글 정말 좋아합니다.

별똥별집사
2
2021-01-07 04:08:43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이 선정된 건 들었는데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넘버 1이었군요. 이런 설명 감사합니다^^

WR
rockid
Updated at 2021-01-07 04:21:01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의 음반 판매량 집계만 봤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다르겠지만, 한국 만큼 클래식 저변이 넓은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는 모차르트가 아닐까 싶지만 그냥 퉁치죠?ㅎㅎ

루퍼트롬멜
1
2021-01-07 04:21:52

 추천과 함께 이런 정보 글 너무 좋습니다.

이런 글때문에 프차를 못 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렌지G
2
2021-01-07 04:21:54

클알못 수준인 저도 이곡은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인데 이렇게나 인기 있었군요.

저는 링크해 주신것중 제일 마지막 두개가 아주 좋습니다.  

 

취한배
1
2021-01-07 04:41:46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all by myself만 알던 시절에 라흐의 피협 2번 2악장을 들었을 때, 이게 그것였구나했었는데, 라흐 피협 2번을 자주 듣다가 all by myself를 다시 들으니까 좀 억지스럽더군요^^ 라흐 본인도 20세기에 여전히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작곡한다고 괴로워했다고 기억합니다. 말러가 my time will come이라 외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 time에서 out되어 있었다고 할까요?ㅎ 혹은 모두가 세잔을 재발견하고 있을 때, 여전히 들라크루아를 그리고 있었다고 할까요?ㅎ 개인적으로는 라흐의 곡 중에서 교향곡 2번 아다지오 악장을 좋아하는데 조금 오래된 연주이지만 유진 오먼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녹음이 가장 괜찮더군요. 전에 국립발레단에서 안나 카레리나로 발레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 라흐와 루토스와프스키의 곡들이 쓰입니다. 라흐의 전주곡 op.23을 처음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고, 라흐 피협 2번 아다지오를 듣는데 소름이 끼치더군요^^ 제 생각에 라흐를 포함한 19세기 음악에는 모데른 이전의 편안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세기부터는 회화에서도 음악에서도 점점 구상이 뭉게져가니까요;; 

그냥_
1
2021-01-07 04:55:29

 http://www.yes24.com/Product/Goods/329831

전 그래서 이 음반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또 다른 위대한 피협 차이콥스키 1번 이 함께 들어 있어서 더 좋구요

moondragon
1
Updated at 2021-01-07 08:10:10

그렇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과 리흐테르면 가히 불패의 조합이죠. 그리고 함께 묶인 차이코프스키 피협 1번과는 흡사 데칼코마니적 관계에 있구요. 그래서겠지만 아직도 간혹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차협 1번이야 바협 2번이야 하며 헷갈려 하는 저는 우둔하게 타고난 제 귀를 괜시리 탓하기도 합니다. 잠시 클래식의 샛길로 빠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ㅡ 독일계 러시안이라, 리히터라고 부르기도 하죠 ㅡ 얘기를 좀 더 해 볼까요.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을 연주자로 꼽힐 리흐테르는 제게 있어서도 '클래식 그 자체'인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리흐테르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본이름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에 걸맞게 깃털 같은 부드러움과 해머 같은 강렬함을 겸비한 피아니스트의 대명사였죠. 그러니까 한 마리 알바트로스처럼 넓은 그의 양팔의 날개 안에 쇼팽과 프로코피에프라는 양극단을 조용히 순응시켜 품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저는 리흐테르의 날개 덕분에 새로운 생명을 얻은 곡으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그 특유의 가곡적 경쾌함을 잃어버리고 쓸데없이 장중해진, 그래서 후대에 거의 잊혀졌던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되살려 놓은 게 리흐테르죠. 이런 예의 쌍벽으로는 역시 글렌 굴드의 바흐를 들 수 있겠네요. 어쨌거나 속는 셈 치고 리흐테르가 연주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의 일청을 권해 봅니다. <해변의 묘지>에서 폴 발레리는 이렇게 노래했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슈베르트를 대신해 리흐테르가 전하는 음악의 전언을 들으며 저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피아노가 울린다...... 살아야겠다! 이렇듯 음악에서의 음표란 삶에서의 느낌표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클래식이라는 몇 세기 전의 음악에 여전히 귀 기울이는 데는 그와 같은 동시대적 울림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문득 도시를 떠나 바닷가로 가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변함 속에도 변함 없는 것들에 기대어 우리의 쓰러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클래식의 뒤늦은 입문 앞에서 망설이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음악이 우리 삶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숨이라면, 클래식은 아마존 밀림이라고. 아니 음악의 지구라고 해야 더 합당할까요. 지구인으로 태어나 지구도 모른 채 죽는 것처럼, 음악을 좋아하면서 클래식을 모르고 숨을 거두는 것보다 원통한 일은 없을 거라고, 감히 저는 말합니다. 지금 당장 죽는데도 돌이켜 제 삶이 그리 후회스럽지 않은 것도 클래식과 보낸 시간이 준 삶의 ㅡ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ㅡ 충일감 때문입니다. ※ 역시나 쓰다 보니 그만 길을 잃어버린 글에서 총총히 빠져나오며...... 말줄임표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RainLeaf
Updated at 2021-01-07 11:48:21

저 역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은리히터의 연주를 제일 좋아합니다. 리히터의 몇 가지 D.960 중 프라하 반을 가장 좋아하고요. 영상 으로 본 피레스 여사의 오래전 파리 실황도 아주 좋았구요. 유튜브 링크 첨부 합니다. https://m.youtube.com/watch?v=7jRJ-QFjWAE

RainLeaf
1
Updated at 2021-01-07 11:46:48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이거 저것 들어 봐도 역시 리히터 59년 비슬로스키와 함께한 음반이 저 에겐 최고 더군요. 치메르만의 피아노는 최고로 꼽힐 정도로 너무나 뛰어난데 오자와의 오케스트라는 도대체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 안가더군요.

그랬군요
1
Updated at 2021-01-07 18:17:04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의 발걸음을 느끼려고 들어보고 연상되는 제가 좋아하는 곡이 생각나 적어봅니다. 

장거리 운전하면서 곧잘 듣는 게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8UDOmUcxCk

무어의 피아노 버전에서 피셔 디스카우의 첫 세 음정만 들어도 그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버전(브렌델 피아노)에서는 다르게 부르는 것은 오늘 찾다가 알았습니다.

줄곧 한가지만 들었거든요.

 

아내에게 겨울나그네 틀어줘 이러면 아무거나 찾아 틀어줘도 도입부만 듣고 피셔 디스카우가 아닌 줄 알겠더군요.(슈라이어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rVdEbLh9Be0

그런데 지금 들어보니 여기 피아노가 잔잔하니 느낌이 좋네요.

 

사실 치메르만의 연주를 귀에 꼽고 책을 읽으려고 했다가 이 곡은 독서에 깔리는 타입이 아니고 집중해서 감상해야 하는 곡임을 알고 겨울나그네로 바꿔 틑었습니다. ㅎㅎ 그러고는 댓글을 쓰고 있어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 들어보니 제 남은 생애 즐겨찾기 해놔야 할 곡이네요.

제 슈베르트 사랑은 피셔 디스카우의 겨울나그네, 죽음과 소녀 현악사중주 두 개 뿐이었습니다. 

죽음과 소녀는 어느 부분을 틀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죠.

부다페스트 사중주단으로 입문해서 평생 이 연주만 듣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tOPeFymqL4

 

죽음과 소녀는 격정적이라 혼자 있을 때만 들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라흐마니노프도 홀로 감상용이고요^^

21번 소나타는 거실에 휴일 오전 인테리어로 펼쳐놔야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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