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70년대까지의 홍콩은 엄청나게 부패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염정공서와 공수처 그리고 시민의 힘
1.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50~70년대 중반까지의 홍콩은 대단히 부패한 도시였다. 영국인, 중국인 공직자 할 것 없이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법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검찰과 경찰 등 공권력은 직접적으로 범죄와 결탁되어 있었다. 당시 뇌물을 의미하는 은어는 ‘차 값을 낸다’였다. 거의 모든 일선 경찰들은 ‘차값’을 통해 큰 돈을 벌고 향락에 취해 있었다.
횡령, 탈세, 도박 등 승부조작, 돈세탁 등 겉보기에는 면세혜택을 통한 자유무역도시로 발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도시가 당시의 홍콩이었다.
2.
이런 가운데 1973년 당시 영국인 홍콩경찰(구룡경찰서 부서장) 간부였던 ‘피터 고드버’라는 인물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유유히 영국으로 출국을 하는 일이 발생하자 누적된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당시 홍콩 시민들은 범죄자와 분간이 어려운 수준으로 흔했던 일선 경찰들의 비리에 지칠만큼 지쳤는데 경찰간부가 아예 대놓고 법을 무시한 행동이 알려지자 참았던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3.
처음에는 ‘고드버를 홍콩으로 소환하라’는 소규모 시위에서 점점 규모가 커지자 그 동안 영국의 불합리한 식민 통치 및 전면적인 반부패 시위의 대규모 저항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영국은 홍콩시민들의 대규모 저항운동에 굴복하게 되었고, 홍콩 총독 산하에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 기구 설립을 허락했는데 그것이 바로 염정공서(廉政公署)이다. 염정공서에는 어지간한 느와르 영화 뺨치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홍콩의 느와르 영화가 발전한 것도 염정공서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4.
염정공서는 고드버를 75년 영국에서 체포해서 홍콩으로 송환한 것을 시작으로 홍콩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고, 이후 사회에 만연해 있던 각종 부정부패를 향해 성역없는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염정공서의 강력한 수사에 경찰 등 기존 공직자들의 반발은 매우 강력했고, 심지어 조직적이었으나 염정공서는 시민들의 탄탄한 지지와 관심에 힘입어 타협하지 않고 본인들의 의무를 수행해 나갔다. 여기에 힘입어 정책적으로도 부패를 방지하는 '부패3륜법' 등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실행되면서 사회적으로 반부패에 대한 단죄는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었다.
5
그 결과 홍콩은 80년대 접어들어 진정한 선진도시로 도약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선진도시 홍콩은 부패가 사라진 80년대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 주류 금융 자본이 (일본을 제외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 증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홍콩에 들어온 것은 80년대 이후인데 만약 염정공서를 통한 부패척결이 없었다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
6.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바로 염정공서와 같은 공직자들의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공수처(고위공직자수사처)라고 생각한다. 김학의 특수강간 사건은 법을 집행해야 할 검찰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의 단죄를 막고 있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버닝썬 사건을 보면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범죄자와 결탁하고 비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조직의 보호와 존속이 우선이기 때문에 스스로 정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고인물은 반드시 썩듯이, 견제없는 권력은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진리에 가깝고 역사에서도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7.
대한민국 검찰은 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수사해서 범죄를 밝혀내는 ‘수사지휘권’과 해당 수사의 결과를 통해 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 범죄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 유래가 드문 권력 집단이다.
김학의처럼 명명백백한 잘못을 한 사람도 '자기식구'이기 때문에 기소하지 않는 것은 권력을 남용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엊그제 해외출국을 하려다가 실패한 김학의를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법을 우습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8.
대한민국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한다. 하지만 검찰조직이 검사와 검찰수사관을 포함해도 약 1만명이 안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10만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을 가지고 사실상의 민생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경찰이다.
그래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데 만약 그들이 부패해 있다면 시민들은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직접적인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버닝썬 사건은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범죄와 유착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꾸는 행동까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9.
견제가 없는 부패한 조직이 스스로 상처를 도려내는 정화가 어렵다면 외부에서 부패를 수사할 수 있는 별도의 전담기구가 필요한 것이고, 때문에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홍콩의 염정공서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염정공서는 부패한 홍콩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였기에 공수처도 충분히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가 된다.
10.
자유당을 포함해서 공수처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공수처는 새로운 권력기관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대통령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일단 현재 논의되는 공수처는 불과 75명 수준으로 정부기관의 ‘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작은 규모이다. 10만명의 경찰조직과 1만명의 검찰조직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 상대가 될 수 없다. 또한 만약 공수처에서 비리가 발생한다면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공수처와 검찰 및 경찰은 상호 견제의 의미이지 어느 한쪽이 우월할 수 없는 관계이다.
대통령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하는 것은 사법체계를 맘대로 농락했던 그들 관점에서나 가능한 언급인지라 사실 별다르게 논평할 것이 없다.
11.
하지만 권력을 나누기 싫어하는 조직의 속성과 부패한 기득권자들의 두려움은 공수처에 대해 끝없이 조직적인 반대를 할 것이다. 홍콩의 염정공서도 당시 경찰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심지어 심심치 않게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기득권도 없고, 숫자면에서도 밀렸던 염정공서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공수처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때문에 공수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좀 더 필요하다.
12.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한걸음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 논의되는 공수처의 설립유무가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주류 언론마저 별다른 관심이 없는 현 시점에서 공수처 설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지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수처를 응원한다.
김학의 사건과 버닝썬 사건의 제대로 된 수사와 단죄를 위해서는 공수처가 필요하다!! 또한 제2의 김학의 사건, 제2의 버닝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역시 공수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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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도끼파가 실존했다고.